작성일 : 16-12-31 21:52
가방모찌와 나이롱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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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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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나는 1980년 무렵 청담동 성당을 시작으로
잠원동 성당. 뉴욕퀸즈 한인성당, 뉴져지 네오니아 한인 성당을
거처 1994년에 귀국해서 지금까지 성당을 다니고 있다.
아브라함 세례명을 받은지는~
2003년에 받았으니까 14년 정도 된거같고,
그러니 23년 동안은 영세를 받지않고
어머니 성아에 못이겨 성당를 다녔다.
아마도 이러한 사례는 전무후무 하리라 생각된다. ㅎㅎ
물론 그동안 통신교리를 여러번 시도 했지만
믿음의 별로 관심이 없는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번번히 실패했다.
한국에서는 어머니 “가방모찌”를 했고,
미국에서는 "차량기사"로 성당에 가고오고 해야 했으며
미사시간에는 매번 뒤쪽 부근에 앉아 졸다가 그만 놀라!!!
주변 눈치 보는 는거 제법 익숙했다.
성체를 모시는 시간에는 혼자 의자에 앉아서
양무릎을 기억자로 드려올려 꼭 붙이고는
왼쪽으로 잠시 후에는 다시 오른쪽으로 마치 기압받는 것처럼...
나의 성당 생활은 무의미하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꿔다 논 보릿자루는 아니였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라는 말이 있듯이
미사시간에 필요한 암송과 성가는 평신도처럼 을픈다.
그리고 봉헌은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나가야 하니까?
그러던 내가 2003년에 세례명을 얻고,
그 많은 세월에 궁금했던 첫 성체를 모셨다.^^ ㅎㅎ
근래에는 지인들 모임에 자주 외출을 한다.
거기에는 가톨릭신자 기독교신자 기타...?
우리모임 가톨릭 신자분들은 신앙생활을 매우 열심히 한다.
식사후 차를 마실때는 종교 대화가 빠질 수 없다.
그때마다 지식이 바닥 수준인 나는 언제나
대화장에 끼지도 못하고 조용히 듣기만 한다.
그러니 그 시간은 나에게 매우 따분하고 지루히기만 하다.
그래도 지인들의 대화는 비교적 짧게 정리를 잘한다.
그들 중에는 어쩌다가 조용하게 듣고있는 나를 바라보면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답한다.
난 나이롱 신자니까? 라고 얼버무리면
한 지인은 굵은 저음의 멋진 음성으로
“나이롱 신자”는 평신도보다 좋다고 라고 말하면서
종교에 깊이 빠져도 안되지만, 맹신자는 더욱 더 안좋다고 ...
냉담하는 신자들 대부분은
종교에 깊이 빠진사람들이 많다고 말하면서
나이롱은 질겨서 잘 안끈어지니까
나이롱 신자가 좋다 라면서 웃는다. ... ^^
나의 “가방모찌”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2019년 8월 18일 어머니께서 좋은 곳으로 멀리 떠나시어
애석하게도 가방모찌는 더이상 진행을 못하고 그만 하차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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